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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기대다』
김남희 지음/빛을 여는 책방 펴냄
 
권혁구 출판전문 기자   기사입력  2019/09/27 [15:27]

같은 영화나 소설, 같은 공연작품을 감상하더라도 보는 이, 읽는 이에 따라 감동은 달라진다. 내 처지나 기분에 따라 하나의 음악이 다르게 와 닿기도 한다. 옛 그림도 그럴 것이다. 학자는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작품에 주목할 것이고, 애호가는 예술성에, 투자자는 소장가치에 주목할지도 모른다.

지은이 김남희 작가가 주목한 옛 그림은 ‘시절인연’이다. 살아오면서 인연이 되었던 사람, 추억이 되었던 일, 기뻤거나 슬펐거나 간에 자신이 맞닥뜨렸던 일과 연결되는 옛 그림들을 해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옛 그림을 중심으로 하되 한국화(1장)와 중국화(2장), 서양화(‘팁’) 등을 소개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그림

1장 ‘옛 그림에 지혜를 구하다’는 옛 그림을 지은이 나름의 계절인연과 연결해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챕터로 구성했다. 봄은 주로 꽃과 관련한 작품들이다. 이제 막 터지기 시작한 매화, 활짝 핀 모란, 선비들의 봄꽃 구경, 새순 가득한 버드나무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다.

조영석(1686년~1761년)의 ‘바느질’ 그림은 봄과 딱히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봄 편’에 배치하고 있다. 해마다 봄이면 쑥떡을 해서 보내는 언니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언니는 우리에게 엄마 같은 존재였다. 책을 읽어주고, 뜨개질을 가르쳐주고, 바느질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한다.

‘언니가 가르쳐 준 바느질은 내 인생의 첫 매듭이었다. 바느질은 모난 것을 둥글게 만들고, 구멍 난 것을 꿰매어 새것으로 만드는 마술이었다. 바느질은 한 사람의 솜씨는 물론 인품까지 보여주는 섬세한 작업이다.’ -34쪽-

어린 시절 바느질을 가르쳐 주던 언니, 이제는 해마다 봄이면 쑥떡을 해 보내는 언니를 생각하니 조영석의 그림 ‘바느질’은 자연스럽게 ‘봄 그림’이 되었다.

 

소나무의 매력은 절개가 아닌 그늘

3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모두 2장으로 구성돼 있다. 옛 그림을 사계절로 분류한 1장이 21쪽부터 219쪽까지로 2/3를 차지한다. 장승업의 ‘홍백매도’, 신윤복의 ‘연소답청’부터 김정희의 ‘세한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전반을 아우른다.

1장 여름편에 소개하고 있는 이인문의 ‘송림야귀도(松林夜歸圖)’는 보름달이 뜬 밤에 소나무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선비와 시동(侍童)을 그린 작품이다. 소나무는 사철 푸르니 계절을 특정하기 어렵고, 굳이 계절과 연결하자면 겨울에 어울릴 법하다. 하지만 지은이 김남희는 달빛에 생겨난 소나무 그늘과 그 아래로 느리게 걸어가는 선비에 주목한다.

‘여름’이라면 맹렬함, 뜨거움, 열정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지은이는 그늘, 그것도 달빛에 생겨난 소나무 그늘과 느린 걸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나무를 시퍼런 ‘절개’가 아닌 ‘유유자적’으로 읽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에 실린 옛 그림과 그것들에 대한 감상은 지은이의 개인사다.

1장에서는 각 계절별 작품과 관련 이야기 말미에 ‘팁’으로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 박생광의 ‘누드’,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 정점식의 ‘와상’을 소개하며, 지은이가 하고 싶은, 그러나 옛 그림 본문과는 색깔이 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적해석과 학문적 평가 
함께 담아

2장 ‘옛 그림에 무릎을 치다’에서는 짧은 글들을 모았다. 한국화와 중국화들이 지은이의 사적 이야기와 어우러져, 혹은 21세기 한국의 사회적 풍경과 접목돼 펼쳐진다. 가령 김홍도의 ‘새참‘은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돼 버린 우리시대 ‘혼밥’ 문화를 들여다보는 렌즈가 된다. 그런가하면 기생들이 단오날 물가에서 몸을 씻으며 노는 그림인 신윤복의 ‘단오풍정’은 전통 명절에 무관심한 현대의 중학생들도 ‘단오’를 기억하게 하는 강력한 기억매체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그림들은 지은이의 생활반경에서 재해석된다. 산행, 꽃 가꾸기, 강의, 친구와 만남, 여행, 독서, 가족 등 지은이와 맞닿아 있는 공간, 일, 사람들이 옛 그림을 해석하는 스키마(schema)가 되고 있다. 각각의 스키마는 같은 그림을 다르게 읽게 한다.

지은이는 화가이자 학자다. 그런 만큼 각 그림과 관련한 역사적 이야기, 화가의 인생, 작품의 시대적 의미, 작품 자체의 예술적 감상요소, 그림 기법 등에 대한 객관적 이야기도 작품별로 고루 담고 있다. 300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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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27 [15:27]   ⓒ 전국아파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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