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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움이 가득한 슬로우 여행, 경북 성주 ‘한개마을’
 
전국아파트신문   기사입력  2020/05/29 [14:06]

조용하고 아늑한, 그리고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전통이 살아있는 경북 성주 ‘한개마을’로의 여행을 추천한다. 한개마을은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과 같이 마을 전체가 민속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되어 한국적인 멋과 풍경이 어우러진 곳이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롭고 느긋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은 당신이라면 한번쯤 꼭 가보길 바란다. 

옛 골목길이 아름다운 한개마을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왜 ‘슬로우 여행’이라 말하는지를 깨닫는 데 1초도 안 걸렸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고택들과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정다운 돌담길, 이것들을 보는 순간 잠깐 세상이 정지한 듯했다. 크기와 색깔,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황토 흙으로 쌓은 돌담길은 걷다보니 저절로 추억 속 고향길이 떠올랐다. 

이어서 하회댁과 극와고택, 도동댁, 한주종택 등 유서 깊은 고택들이 보였다. 고맙게도 구수한 사투리가 정겨운 이곳 주민들은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줬다. 

한개마을은 조선 세종조(世宗朝)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처음 입향(入鄕)해 개척한 마을로, 현재는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성산 이 씨 집성마을이다. 17세기부터 과거합격자를 많이 배출했으며,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등의 이름난 큰 유학자와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계(大溪) 이승희(李承熙) 등의 인물을 배출했다. 

또한 마을의 전통한옥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토석(土石)담이 잘 어우러져 자연스런 마을의 동선을 유도하면서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잘 동화되어 있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마을이다. ‘한개’라는 마을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 큰 나루 또는 개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개’는 ‘개울’이나 ‘나루’를 의미하는 말이다. ‘한개’라는 이름은 곧 ‘큰 개울’ 또는 ‘큰 나루’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에서 온 이름이다. 

달팽이처럼 걸어보는 한개 마을 산책

마을 앞 차를 세우니 마주 보며 나란히 휘어진 돌담이 자연 발길을 안내한다.

봄 햇살을 한껏 받으며 외로운 듯 다소곳이 누워있는 돌담. 길고 혹독한 겨울에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어린 담쟁이 넝쿨들만이 촘촘히 돌 벽을 감싸 쥐며 웅크리고 있다.

돌담의 높이는 키를 넘지 않았다. 담장 안을 바라보는 방문자들의 시선도 담장 밖을 바라보는 집주인의 마음도 무심히 정을 나누고 싶은 것이다. 

마을 초입을 서성이다. 발길을 떼어본다. 차안에서 히터를 키며 왔는데 마을에 들어서자, 쌀쌀한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온기가 스멀스멀 느껴진다. 오전 내내 햇빛을 머금은 돌담이 온기를 내고 있는 것이리라. 어릴 적 추운 겨울이면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돌담에 등을 붙이고 몸을 녹이던 기억이 있었는데 돌담을 쓰다듬어 보니 영락없이 옛날 그 느낌 그 온도로 내 마음속에 다가왔다.

여느 돌담길이 그러하듯 한개 마을의 돌담길에는 각진 모서리도 직선도 없다.

길을 사이에 두고 구불구불 춤을 추는 평행선. 그리고 잘 쓸려진 골목. 네모난 벽돌과 콘크리트로는 흉내 낼 수 없는 포근함이다.

짧은 골목을 몇 번 돌아가니 집집마다 늙은 감나무들이 서있고 능소화 줄기들이 담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우수, 경칩도 지나고 봄을 재촉하는 비도 내렸건만 올겨울 혹한에 많이 놀란 탓일까. 꽃눈은 아쉽게도 입을 다문 채 연초록 눈꺼풀을 보여주지 않는다.

마을은 조용하다. 

옛날이면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골목에서 불숙불숙 튀어나올 것인데 잠깐 짖다가 마는 강아지 소리도 아쉽게만 느껴진다. 아마도 평일 오후라 더욱 한적한 모양이다. 조금 걷다가 보니 마을 사람 둘이 마주보며 걸어온다. 한분은 괭이를 든 70대 후반의 할아버지, 다른 한분은 손에 까만 비닐봉지를 든 할머니다. 

멀찌감치에서 부터 흐뭇하게 눈인사를 먼저 건네주신 할아버지께 고개를 숙이며 말을 걸어본다. 예상대로 두 분은 부부지간이라 하신다. 날씨가 풀려 마을 앞 양파와 마늘을 심어놓은 밭에 김을 메러 가신단다. 헐헐 웃으며 집에 있으니 심심해서 둘러볼 겸 그냥 나가보노라며 참말을 해주신다. 돌담사이로 두 분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려 하니 할머니께서 기어이 사양을 하신다. 늙고 병든 노인을 사진 찍어 어디 쓰냐는 것이다. 그리고 혹여 도시에 사는 딸내미 아들내미 볼까 부끄럽다 한다.

할아버진 손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누구네 지붕에 가려 보이지 않는 마을 곳곳을 안내한다. 할머니는 지난주에 다녀간 막내아들이 주었다며 팩에 든 우유하나를 건네주신다.

죄송스러울 만큼 황송한 인심이었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섰다. 목소리 높이며 열성으로 가르쳐 주신 누구의 집들을 찾아 가기로 해본다. 교리댁, 북비고택, 한주종택, 월곡댁, 진사댁… 돌아본 집들도 참 많다. 갑자기 마음이 살짝 급해지려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하신말씀 “천천히 꼼꼼히 둘러봐. 오늘 다 못 보면 담에 또 오면 되고 그러면 더 반갑겠지.” 걸음이 다시 슬로모션으로 전환된다. 자세히 보니 담장 밑 그늘진 돌에는 어느덧 이끼가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햇살을 가득 담은 골목어귀에는 제비꽃이 고개를 내밀려 한다. 

 

우리나라 전통마을의 전형, 한개 마을

한개마을은 입지의 생김새가 분명한 가장 전형적인 풍수형국을 보여주는 마을로서 앞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백천이 흐르고, 청룡·백호를 완연하게 이루고 있는 해발 325m의 영취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영취산을 중심으로 주위의 산들이 깊은 공간감을 부여하는 위치에 있다. 영취산을 주산으로 하여 서남으로 뻗은 백호등과 동남으로 뻗은 청룡 등이 한개마을을 깊숙이 호위하듯 에워싸고 있으며, 한개마을의 중심에서 약 800m 떨어진 곳에 약 70m인 안산(案山)이 위치하고 있는데, 안산의 높이는 주산과 비교해 볼 때 너무 높거나 크지 않고 작지도 않다.

한개마을의 가옥은 영취산 산자락 해발 40~70m 범위에 남서쪽으로 마을과 집들이 향하고 있어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따르고 있으며, 남에서 북으로 차차 올라가는 전저후고(前低後高)의 모양을 하고 있어서 아늑한 분위기에 어느 집에서나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는 지형을 갖추고 있다.

한개마을은 전통을 많이 유지하고 있는 성주지역의 동성촌을 대표할 수 있는 마을로서 75호의 전통가옥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10동에 이르고 있으며, 건축물의 대부분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건립되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마을구성이 풍수에 따른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류주택과 서민주택의 배치 및 평면도 지역적인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집집마다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 등이 대지의 특성에 따라 배치되어 내외공간의 구조가 다양하다. 가구법도 전래적 구법으로 지붕, 대청, 안방, 부엌, 툇마루 등 거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잘 남아있다. 또한 주생활을 이루었던 가제도구나 유교적 생활공간 등 중요한 모습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어 2007년 11월 2일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교리댁(校理宅, 지방 민속자료 제43호), 북비고택(北扉古宅, 지방 민속자료 제44호), 한주종택(寒洲宗宅, 지방 민속자료 제45호), 월곡댁(月谷宅, 지방 민속자료 제46호), 진사댁(進士宅, 지방 민속자료 제124호), 도동댁(道東宅, 지방 민속자료 제132호), 하회댁(河回宅, 문화재자료 제326호), 극와고택(極窩古宅, 문화재자료 제354호), 첨경재(瞻敬齋, 문화재자료 제461호) 등 모두 9점의 지방지정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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