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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희망을 심었네』
이재태 엮음 / 학이사 펴냄
 
권혁구 출판전문 기자   기사입력  2020/05/29 [14:07]

대구1생활치료센터 운영이 종료된 지난달 29일 한 의료인의 모습이 널리 회자됐다. 치료를 마치지 못한 채 센터를 떠나는 환자를 배웅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들은 환자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서도 완치시켜주지 못했다며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쏟았다.

이처럼 코로나19 현장에서 대구 의료진은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그들을 우리는 사진으로나마 접하며 응원해왔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흔치 않았다. 사진에 담기지 못한 의료진 저마다의 사연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출간됐다. 코로나19로 폐허가 된 대구에 희망을 심은 35명의 의료인의 기록, 신간 ‘그곳에 희망을 심었네’다.

생생하게 펼쳐지는 코로나19와의 사투 현장

코로나19 파견 근무를 뜯어말리는 아버지 몰래 자원한 간호사, 임종을 맞은 환자와 가족 간 통화를 들으며 눈물 훔친 간호사, 10여년간 의사 생활을 했지만 미지의 바이러스 앞에서 두려움부터 엄습했다는 의사, 파견 후순위였지만 순번을 바꿔 가장 먼저 대구로 달려온 타 지역 의사, 병원 근처 원룸에서 숙식하며 환자를 실어나른 환자이송팀.

이처럼 책에는 코로나19와의 전쟁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한 의료진들의 노고가 담긴 일상, 긴박했던 상황, 환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느낀 소회 등 소중한 경험이 기록됐다. 특히 의료진이 신천지 환자들에 대해 ‘그들도 신천지이기 전에 환자였다’고 적은 기록 앞에서는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고글, 마스크 등 보호구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얼굴, 보람과 노고가 한데 뒤섞인 표정, 잠시 쉬는 동안 지쳐 주저앉아있다가도 환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다시금 몸을 일으키는 의료진. 우리가 사진으로만 봐오던 그들의 얘기는 책에서 더 자세하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현장의 긴박감이 그대로 전해져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된다.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은 끝이 없었고, 때로는 시간이 이대로 멈춰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온몸의 땀구멍이 한 번에 열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고글과 마스크로 눌리는 탓에 통증으로 얼굴의 여기저기에다 테이핑해보지만 피할 방법은 없었다.”

한 간호사는 책에서 방호복을 처음 입은 날의 고통을 이렇게 서술했다. 이 밖에도 원래 하지 않아도 될 일이 더해지며 가중되는 업무, 파견 근무 종료 후 가족에게 바이러스를 옮길까 하는 걱정 등 여러 가지가 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환자가 아프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속 리틀 빅 히어로…“의료진 덕분에”

‘대구시 의사회장의 호소’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 개소’ ‘생활치료센터의 탄생’ ‘영남대병원 검사실 오염 소동’ ‘코로나19로 사망한 의사’ 등 코로나19 사태 속 역사적 순간들의 뒷이야기도 책에 고스란히 실렸다.

코로나19로 아수라장이던 시기에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은 스스로 코로나19 관련 업무에 자원했을 뿐만 아니라, 대구시 의사, 전국의 의사에게 지원을 호소하며 엄청난 호응을 끌어냈다. 평범한 의사로 살아온 그가 위기 상황에서 발휘한 행동력이 그를 ‘리틀 빅 히어로’로 만들었다.

김성호 영남대병원장은 검사실이 바이러스로 오염됐다는 중대본 판단을 전해 듣고 병원 식구들 모두 의기소침, 망연자실했다고 회고하며 사건(?)의 전말을 담담히 풀어낸다. 중대본의 최종 조사 결과 기존 검사에 문제는 없었으며, 검사실 신뢰도가 높다고 발표됐으나 김 병원장은 오보에 대한 해명, 억울함을 소명하라는 요구, 격려 전화 등으로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했다.

환자를 진료하다 코로나19에 감염돼 세상을 떠난 고 허영구 원장을 향해 권태환 경북대병원 교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고인에게 ‘진료는 잠시 접어두시고 나들이라도 다녀오시라’ 권하고 싶다며 아픈 가슴을 쥐었다. 권 교수는 고인에 대해 “무더운 여름철, 큰 체구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환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던 의사”라고 추모했다.

코로나19와 싸워 이겨낸 환자들의 의료진을 향한 감사 인사가 책의 대미를 장식한다. 전염병에 고통받는 환자이면서도 스스로 민폐를 끼친 죄인이라는 죄의식까지 지녀야 했던 환자들은 의료인 덕분에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종식될까. 종식이 된다 한들 다른 전염병은 또다시 우리를 덮칠 것이다. 이 책은 의료진, 환자, 시민, 정부 기관이 끝없이 우리를 괴롭힐 전염병에 배려, 희생, 용기로 맞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끈질기게 싸워 결국은 이겨낼 것이라는 희망을 엿보게 된다. “지더라도 끝까지. 대구 만세!” 352쪽, 1만8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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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29 [14:07]   ⓒ 전국아파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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