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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시선으로 그려낸 두 화가…박수근·장욱진
 
권혁구 출판전문 기자   기사입력  2020/05/08 [16:45]

『내 아버지 박수근』  박인숙 지음/ ㈜도서출판 삼인 펴냄

『내 아버지 장욱진』  장경수 지음/ ㈜도서출판 삼인 펴냄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의 일대기를 딸이 직접 쓴다면? 그의 미술사적 업적보다 인간적 면모가 더 빛나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 그리움까지 잔뜩 배인 ‘자(子)서전’이 될 것이다. 화가 박수근과 장욱진의 붓을 통해 한 폭의 그림에 담겼던 딸 박인숙과 장경수가 각자 펜을 들었다. 그들 아버지의 인생사를 한 권의 책으로 그려내기 위함이다.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꼽히는 박수근은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의 귀를 잘근잘근 깨물며 애정행각의 모범을 보이는 남편이었다. 소박하고 순수한 세계를 꿈꾸던 화가 장욱진은 결혼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에 맞춰 전시회를 여는,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로맨티스트였다.

신간 ‘내 아버지 박수근’ ‘내 아버지 장욱진’에는 두 화가의 내밀하고도 소박한 인생사가 딸들의 진솔한 목소리로 펼쳐진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손 때 묻은 가족앨범을 넘겨보는 듯한 기분 좋은 따스함이 전해진다.

내 아버지 박수근

저자 박인숙 씨가 아버지를 떠올리며 하나 둘 끄집어낸 추억이 300여 쪽에 걸친 화가 박수근의 가족사이자 회고록 ‘내 아버지 박수근’으로 탄생했다.

박수근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을 거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풍경을 소재 삼아 ‘사실 그대로의 진실’을 담담히 그려냈던 화가로 “한국의 서정을 성실히 표현한 작가(후원자 마거릿 밀러)”라는 평가를 받는다.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해 왕성한 활동을 했으나 생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후대에야 빛을 본, 슬픈 운명의 화가였다.

‘밀레를 만난 소년’ ‘화가를 꿈꾸는 방랑자’ ‘화가의 첫 출근은 PX’ ‘장군도 부러워한 가난의 행복’ ‘인기폭발 내 아버지’ 등 소제목을 보면 박수근이라는 사람의 인생이 자연히 머릿속에 그려진다. 인물과 성품이 출중해 이웃 여성들이 “저 남자와 살아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막상 창가 너머로 도둑을 발견하자 턱을 덜덜 떨며 “도, 도, 도, 도둑이다”라고 가족들에게 속삭였던 일화를 보면 반전매력에 웃음이 난다.

살아생전 박수근은 유명인이라는 지위를 누려본 적이 없다. 그런 그의 인생엔 거창한 목적이나 근사한 사건들이 없다. 예고없이 찾아든 삶의 고비를 열심히 견뎌내고, 시대의 여파를 묵묵히 받아들였으며 그렇게 켜켜이 쌓인 가족사를 저자는 묵혀둔 일기를 읽어내리듯 이야기한다. 그의 인생과 함께 펼쳐지는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는 그저 배경일 뿐이다.

화가 박수근을 딸은 어떤 사람으로 회고할까. 저자는 아버지를 ‘대자연’이었다고 표현한다. 저자는 “(아버지는) 언제나 스스로 계시고자 했던 큰 존재이며 울림이며 바탕이었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나는 한 사람의 어른이자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내 아버지 장욱진

이 책은 장욱진이 별세한 그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큰 상징이다. 저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버지에 대해 그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아버지 장욱진’의 저자 장경수는 한국 현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화가 장욱진의 큰딸로, 아버지 장욱진의 삶과 그림에 대한 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장욱진의 그림과 사진들과 함께 실었다.

장욱진은 순수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사랑해 까치와 나무, 해와 새를 많이 그렸고 가족 역시 즐겨 그렸다. 이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피란 생활 등 고단하고 힘든 시기에 화가로 일생을 보낸 말수 적은 그가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라거나 “나는 그림 그린 죄밖에 없다”고 말한 것은 화가로서 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단출한 생활을 하며 일생 명예나 돈을 좇지 않고 붓 하나에 의지하며 살았다. 서울대교수를 지냈지만 자신을 언제나 ‘환쟁이’라 칭했던 그는 출근을 할 때도 낡은 양복에 고무신을 신었고, 가족들 어느 누구도 아버지가 교수라고 자랑하듯 떠들지 않았다.

교수직을 사퇴한 후로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하며 살았던 그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어떤 작품에는 아내와 오 남매와 향한 사랑과 정성이 진하게 묻어있다. 일주일동안 냉골에 식음을 전폐하며 그린 작품 ‘진진묘’는 아내 이순경 씨를 향한 헌사다. 불경을 외우는 아내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그린 이 아내의 초상화를 완성하자마자 그는 쓰러져 오래 앓아야 했다.

저자는 아버지 장욱진이 일생을 걸고 걸어온 화가로서의 발자취와 그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삶과 그림에 대한 태도를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대충 보지 말고, 작은 것들도 친절하게 봐라”라고 평소에 이야기한 것처럼 장욱진은 미술사조가 물밀 듯이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갔다.

이 책들은 어쩐지 ‘독자를 위한 책’보다는 ‘저자를 위한 책’이라는 수식이 어울린다. 책을 덮으며 ‘자식이 부모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란 부모의 발자취를 가슴 깊이 새기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각 1만6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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